DAO와 거버넌스 피로: 참여하지 않는 민주주의

Web3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 우리는 보통 ‘탈중앙화’, ‘자율성’, ‘개방된 시스템’을 떠올립니다.

이 새로운 흐름 속에서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탈중앙화 자율조직)는 미래 조직의 대안처럼 주목받고 있죠.

하지만 이 새로운 조직 구조도 완벽하진 않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거버넌스 피로(Governance Fatigue)'라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만 들어도 피곤해지는 이 개념, 왜 생겼고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리고 정말로 DAO는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일까요?

DAO와 거버넌스 피로

 

탈중앙화의 꿈, 현실의 벽

이상적인 DAO는 무엇이었나?

DAO는 태생부터 ‘기회의 평등’을 외쳤습니다. 어떤 국가에 살든, 어떤 계층에 속하든, 인터넷만 있다면 누구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 투명한 스마트컨트랙트, 커뮤니티 주도의 결정, 비민주적 리더십의 해체… 이 모든 것이 Web3 커뮤니티의 이상이자 기대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인이다”라는 슬로건은 초기 참여자들에게 설레는 환상을 안겨주었습니다. 중앙은행 없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디파이(DeFi), 집단이 운영하는 예술품 펀딩, 공정한 수익 분배 시스템 등은 미래적이면서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상은 쉽게 말할 수 있지만, 현실은 언제나 복잡합니다. DAO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몇 가지 장벽이 존재합니다.

• 기술 장벽: DAO 플랫폼에 가입하고, 지갑을 연결하고, 스마트컨트랙트를 이해하고, 제안서의 구조를 파악하는 일은 디지털 문맹자에게 벽처럼 느껴집니다.
• 언어 장벽: 많은 DAO는 영어를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글로벌한 참여가 가능하다는 말은 종종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이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 심리적 장벽: “내가 이 조직에 정말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많은 신규 참여자들의 마음을 위축시키곤 합니다.

‘탈중앙화’라는 단어의 오용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탈중앙화’는 종종 마케팅 도구로만 소비되기도 합니다. 실제론 의사결정이 몇몇 코어팀에 의해 내려지는데도, 표면적으로는 ‘DAO 운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진정한 자율성과 탈중앙화에 대한 신뢰는 점점 낮아지고, 참여자들은 회의감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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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감을 느끼는 거버넌스: 왜 이토록 지치는가?

“민주주의는 단순하지 않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 시스템'입니다. DAO는 이 구조를 디지털화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맹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참여하는 구조는, 동시에 모두가 책임져야 하는 구조이기도 하다는 사실이죠.

이것이 바로 피로의 시작입니다. 처음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지만, 곧 이런 피로가 쌓입니다:

1. 정보의 홍수
   매일 수십 건의 제안이 커뮤니티 포럼과 플랫폼에 게시됩니다. 그 중 어떤 건은 중요하고, 어떤 건은 사소합니다. 그러나 이 구분조차 스스로 해야 합니다.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읽고 판단하기엔 시간도, 에너지에도 한계가 있죠.
2. 지식과 이해의 격차
   어떤 제안은 경제적 구조와 디파이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합니다. 다른 제안은 코드 수정과 스마트컨트랙트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참여자가 이러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3. 지속적인 참여 압박
   거버넌스는 한 번 참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회의, 투표, 제안. 이 모든 것에 항상 참여해야 한다는 압박은 정서적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4. 실질적 영향력에 대한 회의감
   결국 ‘내가 참여해서 뭐가 달라질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참여율은 낮아지고, 제안은 몇몇 사람들만의 공론장이 되어갑니다.

피로감은 이탈로 이어진다

이런 피로감은 곧 DAO 커뮤니티의 침묵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활발하던 포럼도 점점 정체되고, 투표율은 급감합니다. 한때 열정적으로 참여하던 사용자들이 “그냥 누군가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태도로 전환되면, DAO는 사실상 ‘자율’이 아닌 ‘방치’ 상태로 전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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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의 역설: 소수가 이끄는 다수의 시스템

모두의 참여? 정말로?

DAO의 설계는 이상적으로 보면 공정합니다. 토큰 보유량에 비례하여 투표권이 주어지고, 누구나 제안을 올릴 수 있으며, 논의는 오픈된 포럼에서 이뤄지죠.

하지만 이 구조는 또 다른 문제를 내포합니다. 경제적 자산의 집중은 곧 권력의 집중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토큰이 곧 권력이다

DAO에서의 투표권은 대부분 거버넌스 토큰을 통해 행사됩니다. 이 토큰은 돈으로 살 수 있습니다. 즉,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투표권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안에 대해 수천 개의 토큰을 가진 A 사용자가 단 한 표를 행사해도, 수십 명의 일반 유저들이 투표한 표보다 영향력이 클 수 있습니다. 이는 현실 정치에서 대자본이 선거를 좌우하는 구조와 매우 유사하죠.

다수가 있으되, 결정은 소수에게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참여자의 자율성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고래(큰 홀더)들이 다 해먹는 거 아니야?”라는 인식은 새로운 참여를 가로막습니다. 결과적으로 DAO는 ‘개방된 참여’를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소수가 이끄는 시스템이 되고 맙니다.

이는 탈중앙화의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민주주의를 확장하겠다는 시스템이 오히려 새로운 귀족정으로 변질되는 아이러니. 그리고 이 구조가 지속될수록 DAO는 '자율조직'이 아니라 '경제 권력 중심 조직'으로 변해갑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되찾으려면

• 투표권의 재구성: 단순히 토큰 수에 따라 투표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 활동과 기여도를 반영하는 구조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 소수 독점 방지 장치: 1인 최대 투표 한도를 설정하거나, 무작위 위원제를 도입해 다양한 계층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 의사결정 투명성 강화: 코어 멤버 중심의 비공식 결정이 아닌, 커뮤니티 중심의 진짜 논의와 피드백을 기반으로 한 결정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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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 피로감을 줄이기 위한 실험들

다행히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리퀴드 데모크라시(Liquid Democracy)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내 투표권을 위임하는 방식입니다. 필요 시에는 언제든 회수할 수 있어 유연성이 높습니다.
• AI 기반 제안 요약 시스템
  긴 제안서를 요약해주는 AI 도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핵심만 빠르게 이해하고, 중요한 결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 참여 인센티브 도입
  단순히 투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토큰 보상을 주는 구조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참여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 참여자 교육과 콘텐츠 제작
  거버넌스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튜토리얼 영상, 블로그 콘텐츠, 커뮤니티 가이드북 등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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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O의 미래, 참여가 핵심이다

DAO는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스마트컨트랙트와 플랫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 ‘의지 있는 참여자’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참여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의미 있는 관계'입니다. 내 의견이 반영되고, 내 참여가 존중받는 구조. DAO가 그런 공간이 되기 위해선, 참여의 장벽을 낮추고, 커뮤니티에 진짜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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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 : 

1. DAO란 무엇인가?

2. 완전한 탈중앙화가 항상 더 좋은 것인가?